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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행성 (로그 플래닛, 중력 교란, 생명 가능성)
행성은 당연히 별 주위를 공전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천문학 자료를 찾아보다가 별의 중력에 속하지 않은 채 은하를 떠도는 행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천체를 로그 플래닛(Rogue Planet), 또는 떠돌이 행성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에는 공상과학 소설 같은 이야기로 들렸지만, 현재는 실제 관측과 연구가 진행되는 천문학 분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로그 플래닛이란 무엇인가
로그 플래닛은 특정 항성의 중력에 묶여 있지 않은 행성 질량 천체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태양이나 다른 별 주위를 돌지 않고 은하 공간을 홀로 떠도는 행성입니다.
일반적인 행성은 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함께 만들어집니다. 성간 가스와 먼지가 뭉쳐 별이 탄생하고, 남은 물질이 원반 형태로 퍼지면서 행성들이 만들어지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모든 행성이 끝까지 별 곁에 남는 것은 아닙니다.
천문학자들은 로그 플래닛이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항성계에서 쫓겨나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처음부터 별이 되지 못한 채 독립적으로 형성되는 경우입니다.
현재로서는 첫 번째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중력 교란은 어떻게 행성을 추방하는가
로그 플래닛 형성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개념은 중력 교란(Gravitational Perturbation)입니다.
중력 교란이란 다른 천체의 중력 영향으로 인해 기존 궤도가 변형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젊은 항성계에서는 행성들이 아직 안정된 궤도를 갖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목성처럼 거대한 가스 행성이 존재하면 주변 천체에 강한 중력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은 행성이나 원시행성이 거대 행성에 가까이 접근하면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궤도가 크게 변합니다.
일부 천체는 항성의 중력권을 완전히 벗어날 만큼 속도를 얻어 우주 공간으로 방출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초기 행성계에서 상당수의 천체가 이런 방식으로 추방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주요 형성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 거대 가스 행성과의 근접 조우
- 다중 행성계의 중력 불안정성
- 근처 별의 중력 영향
- 성단 환경에서 발생하는 항성 간 상호작용
이러한 과정은 태양계에서도 과거에 일부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은하에는 얼마나 많은 떠돌이 행성이 존재할까
로그 플래닛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예상 개체 수가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2011년 국제 공동 연구진은 중력 마이크로렌즈(Microlensing) 관측을 통해 목성 질량급 로그 플래닛이 매우 흔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마이크로렌즈란 천체의 중력이 뒤쪽 별빛을 휘게 만들어 일시적으로 밝아 보이게 하는 현상입니다. 이 방법은 빛을 거의 내지 않는 천체를 발견하는 데 유용합니다.
연구진은 당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은하에 별 수만큼 많은 로그 플래닛이 존재할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출처: NASA).
이 추정이 맞다면 우리 은하에는 수천억 개 이상의 떠돌이 행성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로그 플래닛은 관측이 매우 어렵습니다.
별빛을 반사하는 행성과 달리 주변에 밝은 항성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암흑 속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적외선 관측 기술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의 등장으로 새로운 후보 천체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특히 오리온성운 부근에서는 목성 질량 수준의 자유 부유 천체들이 다수 관측되면서 관련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태양 없이도 생명이 존재할 수 있을까
로그 플래닛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생명 가능성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생명은 별빛과 에너지 공급이 있어야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부 연구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핵심은 방사성 붕괴열(Radiogenic Heat)입니다.
방사성 붕괴열이란 행성 내부에 존재하는 방사성 원소가 붕괴하면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의미합니다.
지구 내부의 열도 상당 부분 이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만약 로그 플래닛이 충분히 큰 질량을 가지고 있고 두꺼운 대기층까지 유지한다면, 내부 열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일부 이론 연구에서는 이런 조건 아래에서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물론 지구처럼 햇빛을 이용하는 광합성 생태계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심해 열수 분출공 주변 생태계처럼 화학합성(Chemosynthesis)에 의존하는 생명체는 이론적으로 가능성이 있습니다.
화학합성이란 태양빛 대신 화학반응에서 얻은 에너지를 이용해 유기물을 만드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현재까지 로그 플래닛에서 생명이 발견된 사례는 없습니다. 다만 생명체가 반드시 별빛에 의존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존 관점을 넓혀주는 연구 대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떠돌이 행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행성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천체입니다. 별 없이 존재하는 행성, 암흑 속을 떠도는 세계, 그리고 그 안에서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까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로그 플래닛 연구는 우주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